백제역사 유적 지구
왕 연 중(한국발명교육학회 상임고문)
들어가면서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백제역사 유적 지구는 총 8개의 유적을 포함한 유산으로 공주시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 4곳(관북리 유적 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시에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이다.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로 달려가 백제역사 유적 지구는 물론 주변 유적에서 백제인의 지혜를 살펴보았다.
1. 백제(伯濟)는 어떤 나라였는가?
백제는 기원전 18년 온조와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고구려에서 남하하여 지금의 한강 유역 위례성에 건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삼국지’ ‘동이전’이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영역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기원전 1세기 초에 백제 온조왕이 전라북도 고부까지 영역으로 확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삼국지’ ‘동이전’에는 3세기 중엽 무렵까지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 마한(馬韓) 54국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백제는 그 중의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처럼 두 기록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자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백제의 건국 및 영역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결론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즉, 백제는 기원전 18년 위례성에 나라를 세운 온조왕부터 서기 660년 31대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678년 동안 눈부신 문화를 발전시키며 동북아 문화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해상강국이었다.
2. 공주시의 유적 지구를 찾아가 본다
공주시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더불어 공주시내 권역, 인근 계룡산 권역, 동북부 권역의 과학문화 유적도 찾아가 보고, 관련 축제도 알아보았다.
1) ‘공산성’은 어떤 곳인가?
백제의 진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성, 공산성은 백제의 시대의 왕성으로 금강에 접한 110m 높이의 공산에 능선과 계곡을 포함해 쌓은 포곡형 산성이다. 이 성은 백제 22대 문주왕이 475년에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 한 뒤, 성왕 때인 538년에 사비(부여)로 옮길 때까지 5대 64년간 백제왕이 거주했을 것으로 알려진 성이다.
성의 이름은 백제 시대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었다.
이 성은 백제 시대에 토성(土城)으로 축조된 이후, 여러 차례 개축을 거쳐서 현재는 동쪽의 일부만이 토성이고, 대부분은 석성(石城)이다.
성의 둘레는 2,660m인 장방형이고,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이 있다.
성내에는 추정 왕궁지, 임류각지와 같은 백제 유적을 비롯해 쌍수정, 영은사 등 조선시대의 유적들도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특히 2011년에는 연도가 새겨진(645년) 백제시대의 갑옷과 마갑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공산성은 백제의 도성이자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다양한 과학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비단결 같은 금강을 감아 휘도는 고풍스러운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1,500년 전 고대 백제의 멋진 향취가 가슴 속 깊이 전해져 온다.
공산성은 보통사람의 경우 약 1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공산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는데, 동쪽에는 영동루, 서쪽에는 금서루, 남쪽에는 진남루, 북쪽에는 공북루가 있다.
동쪽의 영동루는 공산성의 4개 성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 밑 부분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문터 옆 양쪽에서는 원래의 문을 지탱하는 돌이 그대로 발견되었다.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의 기록(2층 3칸 건물)을 근거로 동문의 누각을 복원하였다.
서쪽의 금서루는 공산성의 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문루(門樓)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1993년에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6~8월 혹서기 제외),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 왕성을 호위하던 수문병의 근무를 재현하는 ‘웅진성 수문병 근무 교대식’과 다양한 백제 문화 체험행사가 금서루 일원에서 열린다.
남쪽의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며, 시내에서 공산성으로 출입하는 정문이다.
높은 석축기단에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내고 있다.
조선 초기, 공산성이 석성(石城)으로 개축되던 시기에 세워진 문루(門樓)로, 조선 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으로 통했던 곳이다.
북쪽의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의 길이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문루(門樓)로 조선 선조 36년(1603년) 옛 터에 다시 지어 공북루라 불렀다.
성문 아래로 금강이 흐르고 있어 문루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멋스럽다. 송시열이 쓴 ‘중수문’을 비롯해 여러 글귀가 곳곳에 걸려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쌍수정, 임루각, 영은사도 성내에 있다.
쌍수정은 조선 인조가 이괄(李适)의 반란(1624년)을 피해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조는 난이 평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신이 기대었던 두 그루의 나무에 ‘통훈대부(通訓大夫)’라는 벼슬을 내리고, 이곳을 쌍수산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조 10년(1734년)에 쌍수가 있던 자리에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쌍수정이다.
임류각은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500년)에 지어진 누각으로 신하들과의 연회장소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궁궐의 동쪽에 임류각을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장(丈)이었으며,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영은사는 조선 세조 4년(1458년)에 창건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의 훈련소로 사용된 장소다. 금산 전투를 치른 승병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조선 광해군 때는 영은사에 승장(僧將)을 두어 8도의 사찰을 관장하게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2) ‘송산리 고분군’은 어떤 곳인가?
공주시 중심지에서 서북방으로 약 1㎞ 정도의 위치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 백제시대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위치는 송산의 남쪽 경사면에 있다. 이곳에는 현재 무령왕릉을 기준으로, 위 동북쪽에 1~4호분이 자리하고 있고, 5호분과 6호분은 무열왕릉과 인접해 있다.
무덤형태는 1~5호분은 굴식 무덤이고, 6호분과 무열왕릉은 터널형의 벽돌무덤이다.
(1) ‘무령왕’은 누구이고, ‘무령왕릉’은 어떤 곳인가?
무령왕은 백제의 25대 왕으로 이름은 사마(斯摩) 또는 융(隆)이고,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동성왕의 뒤를 이어 4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22년의 재위기간 동안 민생안정과 백제의 국력을 신장시켜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이루었다.
15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밝혀진 무덤으로, 무열왕과 왕비의 능, 즉 합장이다. 이 능은 1971년 여름 장마철에 5호분과 6호분의 내부에 스며드는 물기를 막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이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108종 4,600여점인데, 유물 또한 매우 우수하여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에 달한다.
특히 내부에서 묘지석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왕의 무덤 중 유일하게 피장자와 연대를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 연구의 편년 자료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물 또한 백제의 문화, 국제교류, 백제사 연구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이 고분군은 1997년부터 고분 보존 차원에서 내부 관람이 중지되어 관람객들은 웅진백제역사관과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을 통해 웅진 백제를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역사 이야기를 비롯해 재현한 고분 내부를 볼 수 있고, 발굴과정과 무열왕 체험 영상 관람 등 다양한 코너가 있다.
무령왕릉 대표유물은 다음과 같다.
⚫무령왕 금제관식(武寧王金製冠飾) -국보 제154호
금으로 만들어진 왕관 장식으로, 왕의 머리 부분에서 포개어진 채 발견되었다.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 무늬와 불꽃무늬를 기본 문양으로 맞새김질 했다.
불꽃이 중앙으로 모인 형태로, 올라가면서 타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다. 장식성이 강하고 화려하다.
⚫무령왕비 금제관식(武寧王妃金製冠飾) -국보 제155호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포개어진 채 발견되었으며, 왕의 것과 마찬가지로 인동당초무늬와 불꽃 무늬 장식을 맞새김질했다. 좌우 대칭구도로 되어 있다는 점과 둥근 달개가 매달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이며, 왕의 관장식 보다 규모가 조금 작고 간결한 인상을 준다.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石獸) -국보 제162호
돌로 된 동물상으로, 무덤 수호를 위해 만들어졌다.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石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석수로, 머리에는 쇠로 만든 뿔이 하나 있고, 몸뚱이 양측 면에는 불꽃같은 날개가 표현되어 있다.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誌石) -국보 제 163호
지석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일대기를 기록한 돌 판을 말한다. 무령왕릉 지석은 삼국시대 고분 중에서는 유일하게 발견되었는데, 연도 입구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름과 사망일, 안장한 날짜 등이 새겨져 있고, 토왕·토백·토 부모에게 땅을 사서 왕릉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2) 무령왕릉 권역의 볼거리는?
무령왕릉 권역에 가면 국립공주박물관과 공주한옥 마을을 등이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백제 시대의 문화를 주제로 하는 테마박물관인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의 모든 출토품을 전시하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문화재 외에도, 구석기시대부터 마한과 백제, 통일신라로 이어지는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고 있다.
공주한옥 마을은 한국 전통난방인 구들장 체험이 가능한 시설로 설계되었고, 친환경 건축양식인 소나무·삼나무 집성재를 사용하였다. 도시·현대인들이 머물기에 편리하도록 설계된 신식 한옥으로, 가족여행, 수학여행, 기관·단체의 워크숍 등이 가능하다.
2010년 9월 문을 열었으며, 6동/37실의 단체동과 13동 26실의 개별 동을 갖추었다. 부대시설로는 오토캠핑장 4대와 야외취사장 9곳, 다목적실이 있다.
3) 기타
공주시에 가면 시내 권역, 인근 계룡산 권역, 동북부 권역, 관련 축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내 권역에는 충남역사 박물관과 우금치 전적지 등이 있다. 충남역사 박물관에는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 시기까지의 역사 자료와 생활 민속품 5만5천여 점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도자기 공예 교실, 방과 후 전통 놀이 등 문화 행사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우금치 전적지에는 우금치는 동학 혁명군 최후의 격전지다. 1894년 공주의 남쪽관문인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약 10만 명을 자랑하던 동학군은 겨우 1천여 명만이 살아남는 참패를 당하고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민족사적 운동과 관련된 역사의 현장을 기리기 위해 1973년 동학 혁명군위령탑이
세워졌다. 인근 계룡산 권역에는 계룡산, 남매탑,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계룡산은 무학대사가 산의 능선을 보고 ‘금 닭이 알을 품고,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계룡산(鷄龍山)이라 이름 지어졌다.
해발 845.1m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28개의 봉우리와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천년 고찰들이 있으며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풍수지리에서도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히며, ‘정감록(鄭鑑錄)’에 의하면 십승지지(十勝之地), 즉,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고 전해진다.
남매탑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지점인 옛 청량사 터에 있는 두 개의 탑이다. 각각 5층과 7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량사지쌍탑’ 또는 ‘오누이탑’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청량사 전각은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갑사는 통일신라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인 명찰로, 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 주위에는 용문폭포, 수정봉, 천진보탑, 군지대 등 수려한 명승이 줄지어 있어 갑사구곡(甲寺九曲)이라 불린다. 국보 제298호 갑사 삼신불괘불탱화, 보물 제256호 갑사 철당간 및 지주, 제257호 갑사부도, 제478호 갑사동종 등의 유물이 있다.
동학사는 동학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4년)에 회의화상이 창건한 절로, 갑사, 신원사와 함께 계룡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로 손꼽힌다. 현재는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비구니들의 수행사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백제의 역대 왕들과 의자왕의 아들인 풍, 융의 신위를 모신 ‘고왕암(古王庵)’을 암자로 거느리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하려고 계룡산에 왔다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국가에서 계룡 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인 보물 제1293호인 중악단이 있다.
북동부 권역에는 공주석장리 박물관과 공주민속극박물관 등이 있다.
공주석장리 박물관은 선사시대의 자연·인류·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선사시대 유물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사박물관으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을 발굴해 전시하고 있으며, 선사시대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관, 선사공원, 체험 공간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1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공주민속극박물관은 민속연극용 인형, 가면(탈), 전통악기, 무속자료, 각종 연희에 사용되는 소도구, 서적 등을 전시해 놓은 전문박물관으로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 설립하였다. 전시실로는 민속극자료관, 농기구자료관 등이 있으며 인형극 교실과 종이공예교실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관련 축제로는 웅진성 수문병 근무교대식과 계룡산 산신제 등이 있다.
웅진성 수문병 근무교대식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제작된 의상과 소품을 이용해 왕성을 호위하던 수문병의 근무를 재현하는 행사다. 4월부터 10월까지, 공산성 서쪽의 금서루에서 매주 토·일요일(혹서기 제외)에 근무 교대식이 이루어지며, 다양한 백제 문화 체험 행사도 함께 열린다.
계룡산 산신제는 매년 4월 신원사 일원에서 열리는 산악신앙 축제이자 마을 제사 행사이다. 무(巫), 불(佛), 유(儒)의 다종교 공존의 축제인 계룡산 산신제는 조화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정서를 반영한 전통적이고 특색 있는 향토축제이다.
3. 부여군의 유적 지구를 찾아가 본다
부여군은 사비성(泗沘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과 부소산성(扶蘇山城), 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정림사지(定林寺址), 부여 나성(扶餘羅城) 중심으로 살펴보고, 궁남지, 무량사, 대조사, 국립부여박물관, 송국리 유적, 서동요 테마파크 등도 찾아가 보고, 관련 축제도 알아보았다.
1) 관북리 유적지와 부소산성 어떤 곳인가?
(1) 관북리 유적
백제의 마지막 도성인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여읍내의 북쪽에 있는 부소산의 남쪽 및 서쪽 기슭 일대에 위치한다.
1982∼1992년에 걸친 충남대학교박물관의 조사와 2001∼2008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러한 건물과 유물을 통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부소산 기슭이 왕궁의 일부였음은 분명하지만 정전(正殿) 등이 위치한 중심구역과 왕궁의 전체적인 범위는 추정에 머물고 있다.
백제도성의 중심 성으로 평시에는 왕궁의 후원이었으며, 전쟁 시에는 최후 방어성으로 이용 되었다.
산성 안에는 군창지·낙화암·고란사·영일루·사자루 등이 있으며, 고대 중국·일본과 교역로 역할을 하였던 백마강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백마강은 비단결 강물이 흐른다 하여 이름 지어진 금강은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 이르러 비로서 백마강으로 불리 운다.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이다.
이곳은 부여 나성과 인접한 곳으로 공주 구읍지에 보면 ‘관아동십리허유왕릉(官衙東十里許有王陵), 부여 관아에서 동으로 10리쯤에 왕릉이 있다.)’이라 하였다.
백제왕릉원은 동서와 중앙에 각각 무리를 이루어 모두 3군 16기로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고분군은 중앙의 전(傳) 왕릉군 7기이다.
또한 백제 왕실의 원찰로 추정되는 능산리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부여능산리사지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발견되었다.
정림사지는 백제시대의 절터로서, 세련된 멋을 느낄 수 있다.
백제 말 123년의 도읍기를 통틀어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 유적으로 백제 사비도성 건설과 함께 세워져 왕실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곳이다.
백제문화권 정비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주변 부지를 매입하고 발굴조사를 거쳐 가람터를 정비하여 오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백제의 장인들은 기존의 목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재를 택했다.
세부 구성 형식이 정형화되지 못한 미륵사지 석탑에 반하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미를 보여준다.
정림사지 박물관은 백제 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 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하고자 건립되었다.
둘레 약 84㎞. 사적 제58호. 면적 63만4056㎡. 백제의 수도인 사비(泗沘)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있다.
이 나성은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이며, 축성 연대는 성왕대(523∼554)를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나성의 끝부분은 적심석(積心石)을 넣고 축조한 부분이 노출되어 있다.
남쪽 나성은 동리·중리·당리의 뒷산에 연결하여 축조하였으며, 주초석과 문초석이 남아 있다.
부여군에 가면 궁남지, 무량사, 대조사, 국립부여박물관, 송국리 유적, 서동요 테마파크, 관련 축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꽃이 만발한 7월 말이면 형형색색의 천만송이 연꽃을 주제로 한 서동연꽃축제가 열린다.
대조사는 황금새가 내려와 미륵보살로 화현한 미륵도량으로,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성흥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사비시기 수도 부여에 위치하며 당시의 문화재를 연구, 조사하고 전시 교육하는 백제전문박물관이다.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외에도 ‘송국리형 토기’와 ‘비파형 청동검·돌칼·돌화살촉 등 의 유물은 기원전 7세기~6세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부여축제는 백제문화제와 부여서동 연꽃 축제 등을 들 수 있다.
부여서동 연꽃 축제는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유망축제로 지정되었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이란 어떤 곳인가?
발굴 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성곽 안팎으로 폭이 약 1m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시설이 발견되어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5층 석탑(국보 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2)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란 어떤 곳인가?
미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왕이 된 무왕은 왕비와 함께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 가던 중 신기한 일을 경험한다. 연못 속에서 세 명의 미륵부처가 나타난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석탑(14.24m)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석탑이다.
2009년 1월 14일 미륵사지석탑을 해체하여 조사하던 중 내부의 중심기둥(심주석)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2000년 10월 2일 미륵사지 중원 금당지 북편 회랑지 남쪽에서 출토된 금동향로는 결손 부위가 거의 없이 완벽하며, 금도금 상태도 양호하다.
지금까지 발굴 유물로 전해오는 향로 가운데 이처럼 완전한 형태와 양호한 상태를 가지고 발견된 사례는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가 유일하다.
익산시에 가면 익산 쌍릉(사적 제57호), 입점리 고분 전시관, 숭림사, 관련 축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익산 쌍릉(사적 제57호)은 동서로 약 200m 사이를 두고 있는 두 무덤은 백제말 무왕(600-641)과 그 왕비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입점리 고분 전시관은 함라산 능선에서 금강변을 따라 뻗어 내린 남동측에 총 21기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숭림사는 고려 충목왕(1345년)때 창건, 보광전(보물 제825호), 청동은입인동문향로 (지방유형 문화재 제67호)등 많은 유물이 있다.
관련 축제는 익산서동축제로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배경으로 하는 축제마당으로 매년 5월에 개최된다.
이 글은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가 전문가의 발굴조사 및 감수를 거쳐 발간한 각종 문건을 중심으로 정리한 가장 최근의 정보다.
강의는 관련 PPT와 사진은 물론 애니메이션 및 동영상으로 유익하고 흥미롭게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