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사유적지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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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9)
  • 조성호 기자
  • 승인 2019.03.0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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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지구(들어가기I)

이종호박사(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경주역사유적지구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릉원지구를 답사했다면 다음 일정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다.

흔히들 ‘매를 먼저 맞을래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맞을래’ 또는 ‘좋은 소식을 먼저 들을래, 나쁜 소식을 먼저 들을래’라고 말하는데 경주 역사지구를 답사할 때 이런 말이 적격이다. 남산을 답사하려면 남다른 고생이 필요한 곳도 있으므로 이를 먼저 답사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다소 쉬운 일정부터 시작하느냐를 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5구역으로 나뉘었지만 경주가 평탄한 대지위에 건설되었으므로 접근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에 남산지구는 포석정과 같은 과학 유산과 왕릉 같은 불교와 연관이 없는 문화재도 있지만 야외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온 산이 불교 문화재로 뒤덮여 있는 곳이다. ‘남산을 보지 않고 경주를 논할 수 없다’라고 할 정도이므로 남산 전체가 사적 3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오봉과 고위산(수리산)이 있는 남산은 경주 일대에서 보기드문 기암괴석들이 산재하며 수십 개의 작은 골짜기의 소나무 숲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금오봉은 타원형으로 이루어졌으며, 금거북이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하게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도 남산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해발 500미터 미만의 낮은 산이기는 하지만 산은 산이므로 남다른 산행을 각오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남산을 철저하게 답사하려면 한 달도 부족하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불탑 96기, 불상 118기, 석등 22기, 사찰터 147곳, 왕릉 13기, 고분 37기 등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만 672점. 이 중 국보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3점, 지방유형문화재 11점, 지방기념물은 2점으로 남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물로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담 없는 역사박물관으로 볼 수 있다.

현대와 같이 바쁜 세상에 이들을 모두 답사한다는 것은 전문 학자가 아니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므로 <과학문화유산답사기>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것을 기본으로 하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중요도가 높은 유물을 포함하여 다룬다.

 

<남산 도전>

남산에 대한 전설은 매우 흥미롭다.

‘아주 오래 전 경주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으로 ‘쉬벌’이라 불렀다.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이 평화로운 땅을 찾은 두 신을 보았다.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자신과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여신이었다. 너무 놀란 처녀는 “저기 산 같은 사람 봐라”해야 할 것을 “산 봐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비명에 놀란 두 신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발을 옮길 수 없었다. 처녀의 외침으로 두 신이 산으로 변한 것이다. 여신은 남산 서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망산이 되었고 남신은 억센 바위가 있는 남산이 되었다.’남산을 불국토로 여긴 신라인들은 천년을 두고 간수했으므로 남산 자체가 그대로 신라의 사찰이며 신앙처라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역사학자 박홍국은 경주 남산을 두고 ‘신라인의 마음’이라고 했고 시인 이하석은 남산을 ‘아득한 옛사람들의 꿈길을 찾아가는 길이며, 화강암의 굳은 덩어리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뒷길을 서성이는 것이며, 무엇보다 성지순례의 길’이라고 했다.

남산은 동서길이 13킬로미터, 남북 길이 8킬로미터로 40여 개의 계곡이 있는 468미터의 금오산과 494미터의 고위산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높이는 비록 높지 않지만 수십 개의 작은 골짜기 사이로 난 길과 수많은 기암들이 함께 어우러져 신라인들의 믿음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금오산은 남산을 통칭하는 이름으로도 쓰이며 유명한 김시습의 『금오신화』도 이곳에서 저술되었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강 설화가 얽힌 나정(蘿井), 신라 최초의 궁궐 자리인 창림사터, 신라 종말의 비극을 맞았던 포석정터가 남산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상 신라의 역사는 남산에서 막을 열고 막을 닫았다고 볼 수 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 신라인들은 남산을 신령들이 사는 신성한 장소로 숭배했지만 불교가 들어오자 남산의 바위가 석가모니의 진신(眞身)이라는 믿음으로 바뀌어 지기 시작했다. 민속신앙과 불교가 융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남산에 마애불이 많은 것은 그 때문으로 추정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남산지구의 세계유산 37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1) 보리사 마애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93호)

2)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3)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4)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5)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6)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7)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8) 남간사지 석정(지방문화재자료 제13호)

9)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10) 경주배리 삼존석불입상(보물 제63호)

11) 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12)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13)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국보 제312호)

14)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15)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16) 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17) 남산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18) 경주남산 입곡석불두(지방유형문화재 제94호)

19) 남산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

20)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21) 남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4호)

22) 남산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

23) 남산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

24)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5호)

25)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

26) 신라일성왕릉(사적 제173호)

27) 신라정강왕릉(사적 제186호)

28) 신라헌강왕릉(사적 제187호)

29)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30)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31)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32) 경주 남산신성(사적 제22호)

33) 서출지(사적 제138호)

34) 경주나정(사적 제245호)

35) 경주남산동 석조감실(지방문화재자료 제6호)

36) 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

37) 신라 내물왕릉(사적 제188호)

많은 문화재들이 있음에도 국보급이 하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곳의 유물들이 야외에 있으므로 보존상태가 좋지 않고 완성도도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하나하나 남다른 유서가 있는 문화재들이다. 한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산지구 목록 안에 신라 내물왕릉이 있는데 이는 착오다. 우선 내물왕릉은 남산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경주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및 월성지구의 내물왕릉계림월성지대(사적및명승 제2호)인 계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물왕릉은 두 번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셈인데 월성지구를 설명할 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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