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사유적지구(30)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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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30)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 조성호 기자
  • 승인 2019.07.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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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지구(I)

황룡사지구 인근의 월성지구에는 월성을 중심으로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주월성(사적 제16호),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주 시내에 밀집해 있으므로 어느 곳부터 방문해도 무방하지만 이곳에서는 앞에 설명된 순으로 답사에 임한다.

<첨성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첨성대에 대해 국내 학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의 언론은 「첨성대: 천문대인가, 제단인가?」라는 표제까지 달았다. 해방 이후 첨성대는 줄곧 천문대로 알려졌다. 『삼국유사』에 간단하기는 하지만 ‘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즉 첨성대란 별을 바라보는 시설물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첨성대가 별을 보았다는 증거로 첫째 대지보다 높고 둘째는 꼭대기에 사람이 서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특징은 신라시대에 세워진 다른 시설과는 성격을 크게 달리하므로 별을 보는 용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문대라 하면 높은 산에서 별을 보기 편하고 각종 기구가 있어 보기 힘든 별도 관찰하는 곳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첨성대의 높이가 10여 미터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상부로 올라가는 계단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첨성대의 내부가 자연석인 상태로 있으며, 한밤중에 하늘을 보고 재빨리 상부에 보고하기에는 탑 내부가 너무 어둡고 좁으며 발 디디는 곳도 불안하며 위험스러워 과연 이곳에서 굳이 하늘을 봐야 하는지라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김용운 박사는 백제, 고구려나 중국, 일본에 같은 모양의 천문대가 없고 『삼국사기』에 선덕 여왕대의 천문관측 기록이 없는 것을 감안할 때 첨성대를 천문대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으로 비록 선덕여왕때의 천문기록은 없지만 신라시대에 천문기록이 크게 늘었음을 볼 때 첨성대에서 천문을 관측한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으로 구한말부터 첨성대를 연구한 와다(和田)는 첨성대 위에 목조물을 구축하고 혼천의를 설치하여 천문을 관측했으리라고 추정했다. 이러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첨성대가 정말 하늘만 살피는 천문대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첨성대가 천문을 관측하는 소위 관상대가 아니라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다.

우선 김박사는 첨성대가 신라 과학의 기념비적 상징물로서 돌의 수 366개는 1년의 일수, 28단은 28수(宿)를 나타내는 등 기하학적 지식을 반영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중국의 대표적 수학서 『주비산경』을 토대로 신라 학자들이 이 책에 나타나는 수학적인 비례 등을 적용하여 만들어낸 상징적인 건축물이라는 주장이다. 동양사학자 이용범은 첨성대를 과학보다 신앙 면에서 다루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첨성대의 형태가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설’을 내놓아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수미산(須彌山)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영산으로 석가여래의 이상향인 사바세계의 표상이다. 학자들은 수미산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으로 설정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부처가 보궁(寶宮)을 짓고 상주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수미산은 첨성대와 비슷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여하튼 수미산은 둘레에 4대주(州)가 있고, 구산팔해(九山八海)가 펼쳐 있다. 수미산 하계는 지옥이며, 수미산 아래 부분에 인간계가 있다. 산의 중턱에는 사방으로 4왕천(四王天)이 있고 사천왕이 그곳을 지킨다. 수미산설의 요지는 첨성대가 건설된 7세기 초는 신라에서 불교가 크게 융성하던 시기이므로 첨성대는 불교 영산의 모양을 본 따서 불교의 우주관을 상징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제단이라는 것이다. 건국대학교 김기흥 교수는 첨성대가 선덕여왕의 불교적인 도리천 신앙을 담은 것이라고 제기했다. 그의 도리천설은 첨성대가 수미산의 형상을 그대로 모형화한 것이 아니라, 수미산 정상에 위치한 도리천의 세계를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계 중에 가장 낮은 단계인 욕계의 하늘은 육욕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온 우주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수미산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천왕과 그 중생들이 살고 있는 사왕천이 수미산 중턱에 걸쳐 있고 그 위의 수미산 정상에는 중심에 있는 제석천을 비롯해 네 귀퉁이에 각각 8천(하늘)이 있어 도합 33천이 있는데 이를 도리천이라 부른다. 그런데 첨성대의 구조는 모두 31단이며 여기에 첨성대를 받치고 있는 땅과 그 위의 하늘을 포함하면 모두 33단이 된다. 첨성대는 33천 즉 도리천을 상징화한 것으로 선덕여왕이 다스리는 인간 세상과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하늘나라를 연결해주는 ‘우주목이자 현세와 우주를 연결하는 우물’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은 바로 33천 즉 도리천을 지배하는 제석천왕에 대한 신앙심이 독실했다고 알려졌다. 선덕여왕은 신라 왕조에서 특이한 사람이다. 성골이 왕위를 계승하던 신라에서 진평왕을 마지막으로 남자 왕위 계승자가 없어 진평왕의 큰딸인 선덕여왕이 대를 이은 것이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왕위 승계는 평탄치 못했다. 국내에서는 왕위 계승에 따른 반란이 일어났고 외교적으로도 당나라에서 사신을 통해 왕을 남자로 교체하라고 압력을 가할 정도였다. 왕이 되었어도 여러 가지 역학상 힘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선덕여왕은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는데 그녀의 유언은 여자이기 때문에 살아서 제대로 왕 노릇을 하지 못했으므로 환생해서는 도리천의 왕이 되어 남자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 진정한 제왕이 되고자하는 갈망이라고 설명했다. 첨성대가 천문대라기보다는 특정 목적이 있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특정 목적에는 당대의 정치적인 목적도 포함된다. 선덕여왕 재위 중에 무려 신라는 11차례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그중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의 침략인데 선덕여왕은 특히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여왕은 신라의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천명과 관련된 첨성대를 세웠다는 것이다. 즉 분황사를 세웠던 것과 같은 차원에서 첨성대를 일반적인 천문대라고보다는 상징성이 강한 구조물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들 설명과 더불어 강력하게 제시된 것은 첨성대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 제단이라는 설명이다. 이 주장은 일견 이해하기 쉬운 면이 있지만 곧바로 반론에 부딪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일월제 즉 해와 달에 대한 제사를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지냈고 별에 대한 제사인 영성제를 영조사 남쪽에서 지냈다고 했다. 말하자면 첨성대가 아닌 딴 곳에서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냈으므로 당연히 첨성대는 제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태양빛에 의해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 길이를 재서 태양의 고도를 알아내는 규표(圭表)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규표설은 조위(曺偉, 1454〜1503)의 칠언율시에 나온다. 그는 첨성대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규(圭)를 세워 그늘을 재고 해와 달을 관찰한다. 대 위에 올라가 구름을 보며 별을 가지고 점을 친다.’ 그러나 만약 첨성대가 규표 역할을 위해 만들었다면 그런 외형으로 굳이 만들리는 없다는 반론도 즉각 나왔다. 사실 세종대왕의 영릉에 규표가 복원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첨성대가 규표 용도로 만들었다는 주장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조위가 이런 시를 쓴 것은 사실이다. 첨성대가 남다른 것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무거운 돌(한 개의 무게는 평균 357킬로그램)을 쌓은 중력식 구조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높이는 9.108미터, 밑지름 4.93미터, 윗지름 2.85미터이며 전체 무게는 264톤이다. 특히 첨성대가 하늘과 연계될 수 있는 부분은 첨성대 중앙에 위치한 창문이 정남향으로 춘분과 추분에 태양이 남중할 때 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친다는 점이다.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완전히 광선이 사라지므로 춘하추동의 분점(分点)과 지점(至点) 측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투른 아이디어로 첨성대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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