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값진 선물 “아름다운 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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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값진 선물 “아름다운 기도원”
  • 행정신문
  • 승인 2015.04.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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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자 목사, 지난 25년간 생면부지에서 기적은 오직 주님 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예비하심이

 

   
 

뛰어난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4계절 내내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단양!!
이 곳에 위치한 교회수련회 장소를 찾았습니다. 이 곳은 기도원과 교회 2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 “아름다운 기도원(힐링 수련회)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름다운 기도원은 가곡면 향산리 산 4-6번지 해발 450미터 산속 에 자리 잡은 매우 한적한 기도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대자연 속에 아름다운 기도원은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있듯이 그 자태가 아름답게만 느껴졌습니다. 기도원 독립시설만 자리 잡고 있어서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며 크게 부르짖으며 기도와 찬양을 하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라 여겨졌습니다. 
  영화에 나올법한 이곳 향산교회 아름다운 기도원 최현자 원장님(목사)(61세)을 만났습니다. 외모는 외소하지만 의외로 내적으로 강인함과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것 같은 한국의 잔다르크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공기자 : 할렐루야! 이렇게 아름다운 기도원을 방문하게 되고 훌륭하신 최현자 원장님(목사)(61세)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최원장 : 할렐루야! 반갑습 니다.
 

공기자 : “아름다운 기도원”이 이름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기도원 이름을 어떻게 해서 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이 곳에 자리를 잡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최원장 : 제가 기도원을 하겠다고 이 장소를 택한 것이 아니라 100% 하나님께서 지정하 셨기에 생면부지의 땅을 아브라함처럼 5인용 캠핑 텐트 하나 달랑 들고 입산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고 어리석기도 한 행동이었지요. 왜냐하면 처음 입산할 당시 길도 없고 전기도 없고 물도 없는 아주 원시시대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 방으로 직선거리 1km이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지요.
 

공기자 : 인근에 사람들이 살지 않은 곳인데 혹시나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을 하셨나요? 그리고 개척 당시 상황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최원장 : 사람들은 밤나무 밭에 미치 여자 하나 들어 앉았다고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시는 분들조차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저는 개척하면 금방 사람들이 몰려오고 기도소리가 온 산을 덮고 예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제 생각과 달리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날 며칠, 몇 달이 가도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네가 네 임의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불러서 왔으니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응답으로
 

공기자 : 원장님께서는 그렇게 심적으로 힘들게만 보내셨나요?
 

최원장 : 아닙니다. 섬기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중고등부 교사로, 서투른 성가대 지휘자로, 심방자로, 구역예배 인도자로, 두루두루 일하고 있던 때에 부르심을 받았기에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제 생각에도 이상했습니다. 세상에 해야 할 주의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이 깊은 산골에서 가만히 두 손 두 발 묶어놓고 무엇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을 무렵, 성령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임의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불러서 왔으니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그렇구나! 나는 종이다. 하나님이 하라시면 하고 가만 있으라고 하시면 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 책임이 아니고 나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기자 : 원장님께서는 신학교 교수로도 활동을 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교수님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최원장 : 저는 아무도 오지 않은 이 곳에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도를 그려가면서 연대표를 그려가면서 관주를 서로 찾아 맞추어가면서 역사를 공부하며 그렇게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하게 된 것이 창세기 3:15절에 있는 여자의 후손으로 모든 성경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구속이 어떻게 형성되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한예수교 장로교 합동측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 조직신학과 변증학, 역사신학을 좋아했습니다. 그 바탕에서 성경이 풀리는데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것은 희열이었습니다. 이때는 왜 이런 깊은 부분들을 알게 하시는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저를 구속사를 담당하는 신학교 교수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혹독한 겨울, 100일 기도 끝에 인적이 없는 산길에 도로가 생기는 기적
 

공기자 : 원장님의 영적인 상태는 최상의 기쁨을 누렸지만 환경적인 문제에서 많이 부딪혔다고 들었습니다.
 

최원장 : 저는 원래 이런 산골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서울 사람입니다. 입산했던 때는 1989년 4월 봄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됐는데 그 사이 하우스 성전을 만들고 화전민들이 쓰던 건조실을 개조해 나무 때는 방을 하나 조그맣게 만들었는데 문제는 겨울이었습니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를 해야 하는데 방법도 모르겠고 그러던 중 주님께서 사모님 한 분을 보내어 나무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이후 한 겨울에 땔감을 마당에 그냥 두어 꽁꽁 얼어붙은 나무를 더 이상 떼어낼 수가 없어서 그날 밤을 지새웠는데 혹독한 찬기와 뼛속을 휘감는 추위에 견디다 못해 그 길로 기도원을 떠났습니다. 부끄러운 맘을 감출 수 없는 심정이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기자 : 100일 기도를 하면서 기적적인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최원장 : 그 이듬해 1990년 1월1일부터 4월10일까지 100일 기도를 추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어떤 소원이나 의미를 두진 않았지만 사역지로 돌아왔습니다. 바닥에는 불이 없고 난로 하나없이 물 한 그릇을 떠다 놓으면 한 시간 내에 꽁꽁 얼어버리는 곳에서 한 겨울을 지냈습니다. 미리 단언하건데 그것은 제 힘이 아니었습니다. 단단히 결심을 하는 모습을 보고 성령님께서 도우셨습니다. 물론 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때는 너무 힘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자기 연민에 우는 내 모습이 싫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연민에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운다면 저 밖에 예수 안 믿고 지옥 가는 영혼들을 위해서 울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다가 너무 힘들면 하나님 저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고 울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꿈을 꾸는데 제가 지하실에서 조그만 창을 통해서 밖을 보는데 집채만한 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우상이 하늘을 찌를 듯이 여러 개가 주욱 서 있는데 지진이 일어나더니 우상이 무너지면서 가루가 되고 가루가 산이 되었는데 그 사이로 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해석은 쉬웠습니다. 그 우상은 저였는데 우상이 무너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내는 것이 뭐지?했습니다. 나의 길이 열린다는 것인지 길이 생긴다는 것인지...
그러더니 99일째 되는 날 웬 양복을 입은 사람이 기도원 근처에 왔다 갔다하더니 100일째 되던날 사람들이 기도원 근처에 길이 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원 아랫마을 철거 위기의 “향산교회”인수,
주일학교 아이들 양육 모두 주의 종으로
하남교회 부목사, 보라매병원 원목, 전도사, 선교사...

공기자 : 100일만에 인적도 없고 기도원에 도로가 생긴다는 정말 다행이네요.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3년 동안을 부군하고 떨어져서 기도원에 계셨다고 들었는데 3년후 부군하고 기도원에서 합류한 후의 생활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원장 : 남편이 합류한 후 기도원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질환자, 알콜 중독자, 중풍병자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소변을 치우고 씻기고 먹이는 생활이 과반수였고 그럴때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산 아랫마을에 있던 향산교회가 철거가 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교회는 쓰레기더미에 비는 새고 벽은 갈라지고 문들은 너덜거려 건물 벽이 기울어져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문을 열고 전도를 하였더니 주일학교 아이들이 먼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학교 천사들과 환자들과 함께 예배와 기도를 하고 교제를 나누며 성경공부를 쉬지 않고 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두말할 것 없는 행복 그자체였습니다. 그 때 공부했던 아이들은 지금 성인이 되어 모두 주의 종이 되었답니다. 총신대 대학원을 나와서 하나는 미국의 칼빈 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 과정에 있고 한 아이는 하남교회 부목사로, 하나는 보라매병원 원목으로, 하나는 감신대학교를 수료하고 전도사로 하나는 선교사를 꿈꾸며 교회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한 아이만 사회복지사로 장애인 시설의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연단 끝에 집사님 한분이 교회부지 값 2800만원 건축 헌금
 

공기자 : 최원장님이 많은 양들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재로 잘 양육하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물질의 연단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최원장 : 기도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제 정신질환자, 중풍병자, 기타의 병들을 가진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때론 사람을 맡겨놓고 쌀값을 조금씩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연락도 안 되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 쪽에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어서 여러 개의 카드를 사용하여 돌려막기 하다가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공기자 : 물질의 연단은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되었나요?
 

최원장 : 카드사에서 육백만원 빚 독촉을 받는 전화를 교회의 집사님이 듣더니 헌금을 해서 빚청산을 해주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성도님들이 어려운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냉장고며 쌀, 심지어 반찬까지 신경을 써 주었습니다. 또 주일학교 때부터 함께 했던 현재 미국 칼빈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성도가 대학교때 청주에 있는 충북대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수업후에는 알바로 노동일을 하며 성실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노동을 해서 번 돈을 한푼도 안쓰고 하나님께 드리고 주일예배를 드린 날은 다시 3시간이 걸리는 청주로 넘어가고 여름방학 때는 땡볕에서 겨울방학 때도 추위를 무릅쓰고 벌어서 1원짜리 하나 안 쓰고 하나님께 모두 헌금을 했습니다. 이 때 한 집사님이 현재의 교회 부지 값을 헌금하여 부지를 매입했고 2800만원이라는 돈을 건축헌금으로 내 놓고 그 것이 기반이 되어 현재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건축할 시 주일학교 때부터 함께 했던 선교사를 꿈꾸는 자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가 직장을 다니면서 20살짜리가 2년동안 먹고 입고 쓰지도 않고 모았던 돈을 천만원 헌금하였고, 노동일로 돕던 학생은 건축하겠다고 노동일 다니면서 벽돌 쌓는 연습을 해서 건축 할 때 벽돌을 손수 쌓기도 했습니다.

생면부지 땅에도 마실 물과 전기가 공급
- 교회에서 선한 일에 감동받은 면장님, 군위원님이 지하수 설치
새로운 별장 주인 전기 공급의 기적

공기자 : 최원장님의 기도와 하나님을 섬기는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도 감동을 받아 천군천사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서 막내를 순산하셨을 무렵에 하우스의 건축 허가로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최원장 : 11월 16일 출산일이라 몸조리한다고 불 때는 방은 제가 차지하고 나머지는 하우스로 내 몰리게 되어서 건축을 결심하고 허가를 내려고 하닌 불법이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허가 낼 돈도 없었고 아예 무조건 짓자라는 마음으로 벽돌을 외상으로 들여와 지인들의 헌금으로 시멘트를 사들여 함께 벽돌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부에 적발되어 결국 허리만큼 쌓은 블록을 무너뜨리고 환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벌금만 백만원 나왔습니다. 갚을 길이 없으니 하루에 만원씩 교도소에서 백일동안 구치되어 있으라고 통지가 나왔습니다. 친한 전도사님이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하여 돈을 만들어 갚아주면서 모든 것이 끝이 났습니다.
 

공기자 : 물이 없어서 불편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지하수가 생긴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최원장 : 잘 알고 지내던 집사님 한분이 간암이 걸리셔서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기도원으로 요양을 오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품으로 소천하셨지요. 그래서 기도원에서 모든 장사를 지내고 기도원에 매장하고 조문객들을 받았지요. 그때 면장님과 군 의원님도 오셨습니다. 면장님과 군의원원님은 이렇게 좋은 일들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없어 길어다가 먹는 것을 보시더니 지하수를 파주시고 물탱크를 연결해 수도 시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천하신 집사님 남편분이 목수이신데 이때의 인연으로 교회 건축과 기도원 건축 할 시 물질로 몸으로 헌신하셔서 교회와 기도원이 건축되었습니다. 
 

공기자 : 원장님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원과 교회가 설립이 되었네요.
 

최원장 :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기가 없어서 고생을 했는데 전기를 연결하려면 마지막 전주에서부터 1m당 5500원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1km가 넘으니 최소한 5500만원을 들여야 전기를 넣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 가까운 곳에 서울에서 오신 어느 분이 별장을 짓는다고 염소 우리가 있던 곳을 사서 수리를 하더니 같이 전기를 끌어 쓰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교회 사정을 말하자 그 분은 자비로 전기를 설치 할 테니 끌어다가 사용하라고 하면서 설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100만원 정도 들여서 기도원에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해도 고난이요 불순종해도 고난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고난은 순종이 남지만 불순종하는 고난은 고통 그 자체일 뿐
 

공기자 : 건축하는데 있어서 쉬운 일이 하나도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덕분에 일이 순차적으로 잘 진행이 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원과 교회가 이렇게 완공이 되고 성도들은 어떻게 좀 늘었나요?
 

최원장 : 기도원을 건축은 했지만 사람들이 드문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건축하면서 시골교회, 기도원으로서는 조금 감당하기 힘든 일억오천이라는 빚을 졌습니다. 부도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수련회를 하게 하셔서 이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용은 여름과 겨울 수련회를 받는 것과 소그룹 예배들, 간혹 부흥회를 하고 있습니다.
 

공기자 :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아름다운 기도원의 비전에 대해서나 원장님의 바람은 무엇인지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최원장 : 저는 이곳에 도서관도 세우고 싶고 주의 종들의 기도훈련과 말씀 연구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준비된 종들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앞날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범죄 이후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삶은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게 순종해도 고난이요 불순종해도 고난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고난은 순종이 남지만 불순종의 고난은 고통 그 자체일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을 드리고자 생면부지, 오지의 땅에 들어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종이 없이 내 생각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지난 25년이 흘렀습니다. 남들은 그런 세월이 흐르면 눈에 보이는 큰 일들을 해놓고 하는데 저는 겨우 조그만 교회 건축과 조그만 기도원을 건축해 놓았습니다. 너무 작은 일이지만 결과를 보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작은 순종을 중요시하는 주님께 지나온 과정들은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된 나와 주변 분들의 관계,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에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들만 위해서 사는 일반적 보편적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그렇게 인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공기자 : 오늘 이렇게 옥석과 같은 은혜로운 말씀과 간증은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을 수놓는 그런 감동 감화를 받았습니다. 모쪼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몸소 실천하시는 우리 최원장님의 사명감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까지 더욱더 건강하시어 많은 양들을 보살펴 주셔서 하나님의 큰 뜻에 부흥하기를 저 또한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 기대하면서 다음에 만나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할렐루야!
움직이는 버스안에서 공미라기자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습니다.  끝기사 이후에 "함께 공감하시는 분들께서는 이런 사역에 동참하실 분들과 단체,기업이 있으면 아래 번호로 연락주시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칠 수 있도록 아름다운기도원의 중보기도단의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도록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독당원 아름다운기도원 방문

·아름다운기도원 전화 및 핸드폰 번호

 043~422~4291 충북 단양군 가곡면 향산2길 2100
010~3777~1036 최현자원장
010~3003~5191 이주호 협동목사

※아름다운기도원 중보기도단에 참여 하실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남은 세월 주님만 믿고 의지하실 집사,권사,주의 종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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