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때마다 쏟아내는 ‘추다르크 눈물’
상태바
고비 때마다 쏟아내는 ‘추다르크 눈물’
  • 행정신문
  • 승인 2015.04.14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류ㆍ비주류 편가르기 ‘DJ 유지’ 아니다”

POLITICS

고비 때마다 쏟아내는 ‘추다르크 눈물’

“주류ㆍ비주류 편가르기 ‘DJ 유지’ 아니다”

최근 새정치연합 추미애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에서 눈물을 쏟았다. 권노갑 상임고문의 '6:4 지분' 발언의 뜻이 DJ 뜻과 다르다면서 비판을 하면서인데요. '추다르크' 눈물을 의미는 무엇인가. 추 의원의 발언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분위기는 수습국면이었다가 거꾸로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어수선했다. 이를 두고 일부 매스컴은 후폭풍까지 인용할 정도였다.
문재인 대표와 동교동계가 겨우 계파갈등을 봉합한 이후 권노갑 상임고문이 선거지원에 나서기 직전 고 김대중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러 갔던 것. 그 자리에서 권 상임고문은 “지금까지 정당정치 관행상 주류 60%, 비주류 40%를 배합한 정신을 문재인 대표도 이어가길 바란다”는 발언을 했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은 눈물을 쏟으면서 “이거 지분 나눠먹기 것 아닌가.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유지가 아니다. 오히려 유지를 왜곡시켰다”고 비판했다. 이후 두 계파는 머쓱한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서 선거지원에 나서기도 난처한 애매한 상황이 되어 어수선한 분위기가 됐던 것.
겨우 계파갈등이 수습되는가 싶더니 일순간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진 것. 여기서 추 최고위원은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한 것인가. 그녀는 친노와 동교동계 양쪽을 겨냥, 일갈(一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 가장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이 대북송금특검이었다. 그랬지만 그는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에는 내 반쪽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DJ 묘소 앞에서 분열을 결의하는 것은 그분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다.”
추 의원의 강도 높은 비판에 대해 권 상임고문은 “모두가 동참하는 당 운영을 하자는 취지다. 지분 나눠먹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6대 4가 방점이 아니라 함께 동참하자는 운영”이라고 해명했다.

여성정치인 눈물의 의미

그토록 강단있는 여성 정치인은 왜 눈물까지 흘린 것일까. 정치인 추미애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추다르크’다. 판사로 봉직하다 DJ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고 97년 대선 때에는 대선 유세단장으로서 고향인 대구에서 선전했다. 당시 모습이 마치 잔다르크를 닮았다고 해서 ‘추다르크’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런데 최고위원과 정치인을 상징하는 또 다른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물’이다. 그녀는 울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눈물을 많이 보였다. 정치적 고비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눈물을 흘렸다. 이중 가장 많이 알려진 눈물이 바로 삼보일배 때다.  
지난 2004년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계로 갈라졌을 때에 추 최고위원은 민주당에 잔류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탄핵에 동조하면서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돌아선 호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광주에 내려가 2박 3일 동안 무려 15km를 삼보일배하면서 마지막으로 5.18 국립묘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허리를 부여잡고 힘들어하다 결국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를 통해 그녀는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심하게 말하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표현이 맞는 그녀는 선거에 참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지냈고, 그 사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에 복귀해 대선 예비경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캠프 관계자와 회식을 하던 중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다음해 TV예능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2010년 국회 환노위원장을 하던 때에는 당내 반대를 물리치고 한나라당과 함께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동법을 처리했다. 이를 두고 ‘추미애 노동법’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일로 1년 동안 당원 자격을 박탈당하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2011년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해 연설 도중에 또 ‘추미애 노동법’을 언급하면서 눈을 쏟아냈다. 이렇게 눈물이 흔했다면, 울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친노ㆍ동교동계를 향한 쓴소리

그동안 많은 눈물을 보였지만 각각의 의미는 다르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이번에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명이 예전과 지금의 눈물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이번 흘린 눈물은 좀 찐득하고 끈적끈적하지 않을까 싶다. 추 최고위원은 당내에서 친노와 동교동계 전부를 향해 쓴 소리를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녀는 DJ의 적자이면서도 친노쪽에에 걸쳐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양쪽에 빚도 있고 기여한 일도 있다. 판사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대구출신 호남 며느리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그녀의 원래 고향은 대구인데 남편 서성환 변호사는 전북 정읍 출신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7년 열애 끝에 결혼한 캠퍼스 커플로 세인의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나눠질 때에 잔류를 선택했다. 따라서 동교동계 사람과 굉장히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07년 민주당과 다시 열린우리당이 합쳐서 만들어진 대통합민주신당 탄생의 주역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에는 문재인 캠프에서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아 친노에도 걸쳐있는 모양새다. 따라서 친노와 동교동계 양측을 알고 DJ 적자를 자임하는 추 최고위원이 지분을 나눠먹는 분열양상을 보이는 내분상황에서 자신이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무엇보다 그녀의 눈물이 찐득했던 것은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항마로 거론될 정도로 굉장히 잘 나가던 정치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고비 때마다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존재감이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다시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되면서 정치 재기를 노리는 가운데 또 한 차례 찐득한 눈물을 쏟으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취재 오성환 기자 (osy006press@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