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四聖諦]의 지혜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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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四聖諦]의 지혜로 살아가는 법
  • 행정신문
  • 승인 2015.07.2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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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파를 초월한 정원이 아름다운 편안한 기도도량

 

 
조경이 아름다운 가림정사. 주지 일조스님은 중앙승가대학 학생시절부터 불자들이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는 수행처를 만들겠다는 대원(大願)을 세워 전남 순천시 황전면 봉성길 16번지 봉불산 자락에 아담한 사찰을 열었다. 가림정사가 들어선 봉불산은 예로부터 천혜의 자연벌꿀인 석청이 많은 유서깊은 산성(山城)지대다. 스님은 비록 조계종단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을 졸업했
 
지만 명함에는 대한불교 가림정사로 돼 있었다. 우리 불교가 여러 종파로 나눠 분열되는 모습이 너무 싫어 종파를 초월한 도량을 만들겠다는 일념을 엿볼 수 있었다.
“혼인한 사람이 출가를 결심했다면, 아이가 완전히 성장한 이후에 출가하라는 말이 있어요. 가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승려가 되면 아무래도 올바른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조스님은 행복한 가정에 대해 “붓다는 6년 고행 끝에 인연법을 터득했다면서 이것만 알아도 행복한 가정에 도움이 되며, 이를 보강한 설법이 고(苦)·집(集)·멸(滅)·도(道)인 사성제(四聖諦)”라면서 특히 “괴로움은 이미 정해진 것이어서 누굴 만나도 피해갈 수 없다”고 했다.
고해(苦海)를 넘는 사성제[四聖諦]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 또는 생업에 종사하다 보면 서로 부딪히고 뜻하는대로 잘 이뤄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그동안 삶이 풍요롭고 생활이 편리했지만 시기나 질투, 거짓과 탐욕으로 혼탁하고 마음의 중심이 실종된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마음의 균형을 잃었다는 것은 심신이 병들었다는 의미다. 결국 심리적 소외와 불안ㆍ공포ㆍ고민ㆍ정서적 갈등ㆍ스트레스 등 괴로움이 동반된다.
어떠한 연유로 만남이 생기면 남의 험담을 비롯해 심지어 배우자, 그리고 사회ㆍ정치 이야기로 확산되곤 한다. 여기서 서로 이견이 생기면 마음에 갈등을 입는다. 이러한 소모적 논쟁은 사실상 상호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각 분야 전문가에 맡기면 그만인데도 세금제도 등 불필요한 곳까지 신경을 쓴다. 지나고 나면 다 쓸데없는 일로 정력만 낭비하며 스트레스만 받곤 한다.
화엄경ㆍ육조단경ㆍ금강삼매경 등 불경은 세상살이를 고해(苦海)로 표현한다. 석존이 최초 설법한 것으로 사성제[四聖諦]가 있다. 이는 고(苦)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멸하고 실전단계까지 설한 것으로 고성제ㆍ집성세ㆍ멸성제ㆍ도성제가 있다.
佛敎(불교)의 奧義(오의)인 法句經(법구경)은 인생(人生)이 겪는 여덟 가지 괴로움으로 생고(生苦)ㆍ노고(老苦)ㆍ병고(病苦)ㆍ사고(死苦)ㆍ애별리고(哀別離苦)ㆍ원증회고(怨憎會苦)ㆍ구부득고(求不得苦)ㆍ오음성고(五陰盛苦)를 설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에 울고 태어난다. 태중에는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지만 태어나면 곧장 춥고 더운 대기 속에 직접 부딪혀 호흡ㆍ잠자리 등 모든 세상살이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이는 태어나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계 늙고, 병들고, 고통ㆍ죽음을 맞이하는 근본 4고가 있다. 그리고 팔고 중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세상 어느 곳이라도 괴롭고 부정한 것이 있어 사람은 누구나 원수와 함께 살아가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세상 어디든 피할 곳이 없다. 산속에 토굴을 파고 생활해도 그곳 역시 괴롭고 부정한 것이 동반된다. 스스로 싫든 좋든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곳에는 미워하는 미물이나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는 원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괴로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법도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생각만으로도 좀 덜할 것이다. 이것이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애별리고(哀別離苦)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배우자ㆍ친구ㆍ정든 이와 반드시 헤어져야 할 고통이 생기고 결국엔 아끼든 내 몸뚱이와도 죽어서 이별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일체만물은 변하는 성질이 있으며 인연에 의해 모였다가 반드시 흩어지는 생멸의 법칙에 따른다. 뭔가를 좀 잃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쓰러지고 병이 들어 삶에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애착이 지나친 탓이다. 평소 이러한 법칙만 알고 있어도 현실 속에서 자기 마음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어 구부득고(求不得苦)라 하여 사람이 살아가면서 뭐든지 구하려는 본성이다. 시장 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게 된다. 사람들이 제 각각 자동차ㆍ배ㆍ비행기 등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다니는 것은 전부 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물질이든 정신이든 마음먹은대로 구해지지 않는 것이 괴로움이 바로 구부득고다. 조금만 뒤돌아보면 현 위치가 가장 풍요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까운 곳만 둘러봐도 가난하고 소외된 것으로 여긴다. 아무리 모아도 부족한 것은 항상 존재한다. 이는 인연법에 의해 정해진 법칙이다. 봉급이 조금 적고 사업이 다소 부진하다고 시기ㆍ질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자와 빈자를 무슨 잣대로 헤아리겠는가. 쉽게 답을 내리긴 어렵다. 돈이 많다고 부자인가. 물질이 조금 부족하다고 가난하다고 단정할 수 있나. 어떤 이는 돈이 많으면 당연히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몇천억원을 가진 자가 괴로운 문제에 봉착했다면 그럼에도 부자라고 할 수 있는가. ‘여여지지’라는 노래도 있듯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받아들이는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쨌든 구해도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괴로움이 구부득고다.
마지막 네 번째가 오음성고다. 이는 치성했던 육체적 본능이나 정신을 원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먹고 보고 성욕이나 춥거나 덥고 잠 온다고 몸뚱이가 끊임없이 요구함에도 절대 충족할 수 없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요구하고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여달라 하고 입에는 맛있는 것을 넣어달라고 메르스 질환을 예방해 달라고 그런다. 이처럼 몸은 끊임없이 요구한다. 하지만 요구대로 전부 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다. 이러한 법칙을 전부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육체적 본능이나 몸에 적당한 병이 있는지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다. 요즘 시끄러운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병은 아무나 다 들어오는 것은 아니며 남의 말을 액면 그대로 전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고성제는 인간이 겪어야할 고통을 실존적으로 표현한 석존의 진리다. 그런데 왜 이런 괴로움에 번민하는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고(苦)의 결정체인 원인은 번뇌망상에서 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기심ㆍ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 등 모든 집착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점과 원인을 찾았다면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단계가 멸성제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았다면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 하나 해결하는 것이다. 그 방편을 팔정도가 잘 가르쳐주고 있다.
이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이 바로 도성제다. 완치단계로 실천수행방법에는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생각, 바른 수행이다.
중생을 괴롭히는 근본적인 독소는 삼독심이다. 여기서 삼독은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말한다.
우리가 누구에게 탐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풀거나 탐심을 앞세워 행위를 하여 뭔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결과를 낳곤 한다. 이는 보이지 않은 눈과 귀가 보고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보이는 선행이나 사업을 열심히 해도 결과는 불행한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어떤 일을 행할 때에 최소한 탐심을 2순위로 보내고 행하는 것이다. 일례로 매일 한 개씩 황금알을 낳는 신기한 거위 한 마리를 어느 사내가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욕심이 지나쳐 차라리 거위을 잡아서 황금알을 한꺼번에 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목을 쥐고 털을 뜯고 배를 갈랐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단 한 개의 황금알도 없었다.
누구를 도울 때에 목적의식 속에 탐욕이 동반됐다고 하자. 그럴 경우 도움을 받는 이는 마음속에 있는 눈귀가 이를 보고 들어서 돕는 자의 선의 목적은 사라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식이다.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은 곧 나를 무너뜨리고 괴롭히는 것이라 독(毒)이라 한다. 가정이나 직장 등 어떠한 환경에서도 어리석은 마음이나 분노 탐심을 앞세운다면 결과는 뻔하다.
하나의 삼독은 또 다른 삼독을 낳아 결국엔 파멸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직장에서 운전을 하거나 공장에서 생산을 하거나 가정에서 가사일을 할때에 독한 마음을 가지고 행한다면 결과는 항상 불행으로 귀결될 것이다. 돈을 벌거나 승진하려면 그 과정에서 삼독심은 최소한 1선이 아닌 2선으로 내보내면 그나마 중간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불법을 일시에 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념만 가지고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순천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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