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정주영ㆍ이병철 ‘농업한국’에서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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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정주영ㆍ이병철 ‘농업한국’에서 찾아라
  • 행정신문
  • 승인 2016.05.0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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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한국경제는 세계적으로 상위에 랭커되는 클래스의 경제규모와 실력을 갖추

   
  김정호교수

게 됐다. 전쟁이 끝난지 이제 겨우 70년 한 세대의 나이 밖에 지나지 않은데도 말이다. 우리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선두그룹의 장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를 견인하는 원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두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을 시작하자마자, 세계로 나가는 매우 독특한 전략을 폈다. 1950년대말~60년대까지 신흥독립국중에서 이처럼 진취적인 국가는 없었다. 한구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세계 최강기업들과 충돌한 것이다. 직접 부딪히다 보니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세게 최강 선진기업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뜰을 뛰어넘었다. 그런식으로 한국의 생산력은 세계 최강수준까지 올랐다. 제조업ㆍ조선ㆍ전자ㆍ자동차ㆍ석유화학 분야가 대표적이다.

우리 일찍이 세계로 나아가 세계 최강의 선진국들과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근로자들이 정신무장에서 찾게 된다. 60년대에 흘러나오는 ‘잘 살아보세’라는 노랫말도 있지만 당시 우리 근로자들은 부지런하고 창의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나의 동기부여을 통해 의지를 다진 것이다. 새마을 노래처럼 ‘새벽종이 울렸으니 일어나자’는 말처럼 정말 실천에 옮겼다. 노동자들이 각성하면서 실제로 부지런하지 않았던 사람조차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러한 국민의 변화에는 정치도 상당히 영향을 줬지만 이병철이나 정주영 같은 기업가들 또한 근로자들의 의식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한국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굉장히 높아졌던 것. 이것이 한국이 성공한 비결이 됐던 것.

진작부터 해외로 나갔고 그곳에서 일감을 따왔고, 근로자를 각성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생산성을 이뤘다.

 

우리나라는 내수나 주변국 무역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속에서 수출과 글로벌 시장이라는 경쟁력있는 분야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생산성 향상을 맡은 노동자 등 경제주체의 각성을 이끌어냈다. 여기서 기업의 역할론이 무게를 더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아직까지 삼성ㆍLGㆍ현대가 한국경제를 이끌어간다고 다들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재벌의 오너일가가 쥐락펴락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한국경제의 독특한 일가

 

한국경제는 오너 패미리가 큰 기업을 소유하고 있어 부담도 되고 모양새도 별로 좋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굉장히 독특한 경제발전전략을 택했다. 2차 대전 이후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한 100여개가 넘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당시 국가들이 50~70년대까지 선택한 경제개발전략은 국가주도전략이었다. 당시 공무원들이 국영기업을 통해 산업을 주도해 나갔다. 일종의 사회주의와 비슷한 체제였다. 그런데 신흥독립국들은 대부문 반사회주의 국가였다. 한국은 어떤 면에서 독특한 것은 기간산업분야까지 민간 기업가에게 맡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경유착이란 말조차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와 경제가 섞여 정경유착이 나타났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통해 성공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기업가들은 다른 신흥독립국가에서 공무원들이 했던 일을 한국에서는 기업가들에 맡겨 함으로써 이를 수춣산업으로 성공시켜 버린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제헌헌법에서 국유화하기로 예정된 규모가 큰 기간산업이었다. 그리고 모든 신흥독립국가에 국가에서 기간산업을 하도록 돼 있었지만 우리만 이러한 트렌드에서 벗어난 것이다. 광고에도 백사장이 있는 항공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곳에 제철소를 짓겠다’고 국가가 아닌 기업가가 다짐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한국정부는 포항제철조차도 박태준이라는 기업가에게 줬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들은 포항제철에 일체 손을 못되게 했다. 이것이 훗날 세계적인 수출산업으로 발전했고, 이러한 대규모 기업은 국내 5천만 인구에 비한다면 너무 큰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중국ㆍ미국ㆍ브라질 같은 거대한 국가였다면 이렇게 까진 안했을 것이다. 작은 한국에 비교했을 때에 기업의 규모는 너무나 큰 편이었다. 국가에 비해 기업의 덩치가 너무 크다보니 계속 삐걱거리곤 했다. 우리는 선진적으로 경제영역을 키우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동안 경쟁관계에 있던 신흥독립국에 비해 우리가 굉장히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발전방향은

 

우리가 글로벌스탠다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업구조나 의사소통을 개편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이러한 전략으로 성장을 해왔다. 그동안 6대 주력업종을 끌어내려서는 안되고 나머지 분야 또한 그럴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새롭게 주목한 분야는 어느 것인가. 바로 농업이다. 우리 농업종사자 평균 연령을 보면, 67세로 되어 있다. 일반회사로 본다면 다들 은퇴한 나이다. 이를 본다면 우리 들판은 비어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농업에서 기회를 엿볼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된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나의 직장은 농촌이야 농촌에 들어가 세계로 진출하겠노라고 다짐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이제 농업은 과거와는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직장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례로 바이오 신산업을 생각할 수 있다. 농업분야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농촌으로 들어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곳에 들어가면 내 일생을 망친다고 여긴다. 농촌에 들어가 세계를 꿈꿀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기반은 바로 제도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제2의 정주영같은 젊은이가 농촌에 들어가 현대건설이나 중공업같은 큰 기업을 만들 수 있게 장애물을 거둬줘야 한다. 교육도 유통도 금융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중에는 이병철이나 정주영같은 젊은이가 많이 있다. 이들은 낙후되고 사방이 막혀있는 레드오션 분야에 가서는 제대로 비상할 수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날개를 펼 수 있게 족쇄를 거둬야 한다. 농업 또한 과거의 자급자족식 농업이어서는 안된다. 농업 또한 세계로 나가는 농업이어야 한다. 일례로 하림같은 기업을 예로 들면 이미 세계로 진출해있다.

“하림처럼 해외로 진출할 기업이 농업분야에서 5~6개 정도는 30년 이내에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시장을 넓히면 한국농업의 문제는 해결된다.”

“농업분야에서 세계적인 일자리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김정우 교수는 “해외로 눈을 돌레 기회를 넓히는 가운데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농업외에 금융이나 유통분야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어느 교수는 농촌은 노령화가 진행되어 더 이상 인구의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소멸사회라며 우려감을 드러냈다.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의료시설(특히 산부인과)의 인프라를 마련해준다면 새로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종자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미래 농업분야에 대한 진출여부는 교육을 통한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작은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가야 하는가. 요즘은 더욱 사정이 좋지 않아 흙수저ㆍ헬조선 이야기도 나온다. 취업이 안되고, 실업과 신용불량자가 속출한 실신세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는 가능성과 힘이 엿보이지 않는가.

혹자는 대학교수를 향해 ‘도대체 당신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사는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는 볼멘소리를 듣는 순간 주춤거리곤 한다. 대학 교수들은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과연 사람들엑 도움이 되는 것인지 회의감에 잠기곤 한다. 예전만 해도 교육열이 연산력ㆍ외국어 구사력 ㆍ규율 습득ㆍ공손함 등을 증진시켜 한국경제 발전과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 직장에 다니면서 서른살 즈음 절박한 심정으로 야간대학에 다니면 더욱 실력이 높아질 것이란 얘기다.

 

옛날에는 교유깅 하나의 투자였다. 그래서 교육을 받으면 번듯하고 생산성도 높았고, 교양까지 겸비했다. 그런데 지금 대학교육은 어떠한가. 취업이라는 단일목표에 매달린 채 불만만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취업교육을 한다지만 영어를 잘하게 하는 정도에 그칠 따름이다. 이것이 우리 젊은이들이 처해있는 암담한 현실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현장이다. 한국대학이 공자왈 맹자왈 식으로 흘러가고 있어 정말 걱정스럽다. 한국대학이 조금은 실용적으로 가야 한다.

학생들은 ‘내가 왜 대학을 가지, 안가면 창피해서 가는가. 대학에 가서 뭔가를 배우기 위해 가는 것이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교양이 떨어지는가. 직장 다니는데 지장이 있는 걸까’ 등 심각하게 반성을 해볼 일이다.

뚜렷한 목표의식보다는 자격증 획득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독일에 가면 기술계 마이스트고를 졸업해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면 우리나라 대기업 사무직 부럽지 않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실업계 고교를 나와 공장에 취직하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공계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조선산업이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곳에는 고졸출신자들이 상당히 투입돼 있다. 공고를 졸업해 조선소에 20~30년 동안 일하면 연봉이 어느 정도일까. 과거에도 고졸출신 연봉은 상당히 높았다. 대졸자와 공고출신자의 초임을 비교하면 차이가 있지만 40세 정도에 받는 연봉을 비교한다면 양측의 급여차이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상고를 졸업해 은행에 들어간 사람들은 결국 중간에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40세가 되면 고졸 컴플렉스에서 벗어난다.

만약 마이스트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경우 인생에서 마이너스가 될까. 결코 아니다. 무조건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학부모부터 보다 실용적으로 변해야 한다. 실질적인 행복을 위해 불필요한 오해를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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