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최종성명기자회견 질의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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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최종성명기자회견 질의답변
  • 최은경
  • 승인 2016.10.2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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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00여명의 이대생들과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질의응답서를 낭독했다.

2016년 23일 1시, 이화여대 총학생연합은 최경희 총장이 사퇴함에 따라 본관점거 농성을 해재하고 본관 앞에서 최종 기자회견을 가졌다. 총 400여명의 이대생들과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18명의 이대생 지원자들이 최종성명서와 기자 질의응답서를 낭독하였다. 
2016/10/23 4:30  최은경 기자
 

마지막 기자회견 질의내용 2016.10.23
 
-내부 정리 등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본관에서 나오는 것은 언제인지요? 날짜, 시간등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관의 공식적인 점거 해제는 이사회로부터 최경희 전 총장의 사직서 수리 확정 공문을 수신한 10월 21일입니다. 그러나 장기화된 점거로 인하여 내부의 청소 및 비품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본관을 나오는 것은 저희 내부에서는 10월 30일까지 점진적으로 퇴거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학교 본부와 조율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대문경찰서 소환 대상자는 총 몇 명이고 앞으로 수사에 어떻게 응할 예정이신지요?
 
  현재 소환 및 수사 대상에 대해서는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6명 외에는 저희도 정확히 알고 있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 시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주동자와 대표자가 없었으며, 그 어떤 것도 누구의 주도하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경찰이 신상이 드러난 특정 학생들을 소환하는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바이며, 이를 위해 학교 본부가 이화인을 보호하기 노력을 지속할 것을 촉구할 것입니다.
 

-점거가 길어지면서 본관 내부에 수면실, 공부방, 나눔존, 게임존, 체험존 등을 꾸미며 지루한 기다림을 버텨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관에서 떠나기 전 내부를 공개할 계획은 없는지요?
 
  본관 내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희 역시 소장하고 기록해두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경찰 수사와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있어 이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양해와 배려를 구합니다. 저희는 본관을 완전히 퇴거할 때, 모든 것을 저희가 점거하기 직전인 7월 28일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합니다.
  말씀해주신 수면실, 나눔존, 게임존 등 뿐만 아니라 캘리그라피, 학업 멘토링 등의 재능나눔, 선배들의 진로멘토링과 심리상담 등 많은 이화인들이 긴 시간을 함께하며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이러한 모임과 이벤트를 통해 두려움의 시간을 극복해나갔으며, 서로의 이름과 나이도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벗’이란 이름으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고 기억 속에 남겨두려고 합니다.
 

-기존의 시위들과 달리 집행부나 주동자가 없는데도 80일 넘는 긴 시간동안 진행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저희는 7월 30일 이후부터 공통된 단 하나의 신념을 공유했습니다. 그것은, 총장이 직접 학내에 경찰 1600명을 요청하여 학생들을 진압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므로 반드시 그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학생들을 보면서 폭력 진압 사태에 대해 차마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는 학내에서 공권력에 의한 폭력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그 신념 하나로 긴 시간동안 시위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실로 86일간의 본관 점거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이화에는 서로를 벗이라 부르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는 위계질서가 없는 수평적인 관계로, 나이나 학번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의미입니다. '벗'이라는 호칭 아래, 개인들은 동등하게,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지도부가 없는 만민공동회를 통해, 단 한 명의 의견도 소중히 여기고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따라서 갈등과 반목보다는 협력을 통해 분열하지 않고 다함께 시위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책임 있는 태도 덕분에 장기 시위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 누구에게도 과도한 책임이 지워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했습니다. 이화인들은 각자의 책임감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경찰 및 학교 본부의 압박에도 책임을 분산하여 시위를 장기적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뜻을 표현한 것이 사발통문입니다. 특정 학생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본인이 주동자라고 주장하는 5595명은 실명으로 서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원동력으로 80여 일이라는 긴 시간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 시위를 진행하며 가장 위기였던 때는 언제인지요?
 
  최경희 전 총장이 오기로 한 시각에 아무런 대비없이 경찰 1600명을 마주했던 순간이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로 본관 안에서 외부의 편견과 믿었던 학교당국의 외면에 맞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야만 했던 모든 시간이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옆에 있는 ‘벗’이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 서로를 안고 보듬어 주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순간이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 처음 본관 점거를 시작할 때 시위가 이렇게 길어질지 예상을 했었는지요?
 
  저희 학생들 역시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니었지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있었기에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본관 점거는 해제하나, 시위가 완전히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될 때까지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이화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고 공정한 이화를 만들기 위한 저희의 또다른 시작을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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