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 교수로서의 봉사하는 삶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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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 교수로서의 봉사하는 삶의 실천
  • 행정신문
  • 승인 2017.11.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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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한 인천재능대학 교수
임춘한 교수

인천재능대학 레져스포학과 임춘한(林春漢) 교수는 대학시절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스포츠맨이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하여 야구명문 선린중-충암고-한양대에서 야구를 계속했던 임교수는 대학교 입학 때부터 교직에 뜻을 품고 학업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양대 야구부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는 천보성 전LG감독, 정현발 전 경찰청 감독, 김유동 전 OB베어스 선수, 정순명 전 국가대표, 김한근 한양대 야구감독, 고 장효조 전 삼성라이온즈 2군감독 등이 있다. 임교수는 재학 중 현역복무를 마치고 졸업후 인천 대헌중학교 체육교사로 임용됐다.

체육교사로서 야구부 감독과 부장을 겸직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스포츠생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끝내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전문가로서의 길을 닦았다. 성실하고 진지한 임교수를 눈여겨 본 대헌재단에서는 대헌공업전문대학(인천재능대학 전신) 사회체육학과 교수로 임용함으로써 임교수는 1991학년도부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야구선수 출신의 대학교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통방통한 일이며 거의 모든 운동선수의 꿈이요, 로망이다. 운동선수 출신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침술봉사를 통한 기독교사랑의 실천

임교수는 스포츠생리학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침구를 연마하여 자격증을 취득했다, 관련강좌를 개설하여 강의를 하는 한편, 지난 20여년동안 방학 때만 되면 대학생들과 함께 인천지역 도서지방을 비롯한 무의촌에서 침술봉사활동과 독거노인 케어봉사를 하였다. 강화 앞바다 볼음도에서 침술봉사를 했던 어느해, 오랜 동안 류마티즘 관절염(엄지발가락 관절이 검지 쪽으로 휘는 질환)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던 할머니를 4일간 임교수의 침술을 받고 완치되어 마을회관내 봉사자 학생들앞에서 감사의 큰절을 받은일화도 있었다. 임교수는 연평도 주민중 70세이상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 액자를 만들어 드리는 활동을 한 까닭에 연평도 주민들은 임교수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테니스 애호가인 임교수는 휠체어 장애인들에게 자원봉사로 테니스를 가르치고, 적지 않은 자비를 써가며 장애인테니스 선수를 육성, 2000년 4월27일부터5월4일까지 일본 고베에서 열린 세계장애인테니스대회에 한국팀 선수단장을 맡기도 했다.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자원봉사활동이 많아지자 주변에서는 ‘혹시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며 임교수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지만, 임교수는 대답 대신 현장으로 달려가 묵묵히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웃과 함께함으로써 기독교사랑을 실천하여 그들을 머쓱하게 했다. 또한 임교수는 지난 28년동안 장애인의 인권증진과 복지실현을 통한 사회통합의 도구이자 전문신문인 ‘장애인복지신문’의 운영위원으로 사재를 바쳐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실버케어복지학과 창설 주도

장애인과 노인의 안타까운 현실을 하나씩 깨닫게 된 임교수는 이를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노인복지와 장애인복지는 별개가 아닌 하나의 학문적 기반과 하나의 제도적 정책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과 의지로 실버케어복지학과 개설을 주도했다. 전국적으로 실버케어복지학과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2005학년도 즈음이었고, 재능대학과 임교수는 이를 선도하게 된 것이다.

임교수는 학과장을 맡아 개설초기의 어수선한 학과를 제자리에 정착시키고, 실버케어복지학을 현장에 접목시키기 위해 커리큘럼과 코스웍을 개발했다. 임교수는 동료상호상담(peer counseling) 프로그램을 도입, 노인문제 진단과 처방을 위한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한편, 특히 만학도(학생)를 현장실습을 시킴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는 커리큘럼으로 여타 대학과 차별화시키기도 했다. 또한 임교수는 국민건강 보험공단 인천중부지사 등급판정위원장등,각종 정부위원회 활동을 통해 노인문제, 사회복지문제 해결을 위한 수많은 정책 제안과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다했다. 학과를 개설한지 불과 3년 만에 지역노인복지를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수많은 프로그램을 정책에 반영시켰다. 더불어 수많은 실버케어전문가를 양성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열악한 인천지역의 노인복지 문제 해결에 소임을 다한 임교수는 2009학년도에는 친정인 레져스포츠학과로 돌아왔다.

국내최초 야구학과 개설, 재능대학 야구부 폭풍의 눈으로

스포츠레져학과로 돌아온 임교수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야구학과 창설에 힘을 기울였다. 단순히 운동종목으로서의 야구를 넘어서는 학문으로서의 야구, 사회적 네트웍으로서의 야구와 비즈니스로서의 야구산업을 개발하고 육성하기 위한 우리나라 대학 최초의 도전이었다. 야구학과 개설과 더불어 야구부를 창설한 재능대학은 임교수를 야구부장 겸 단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임교수는 네트웍으로서의 야구인과 야구계를 엮고 학문과 접목시킴으로써 비즈니스 단위로서의 야구계를 위한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한편 임교수가 지도하는 재능대학 야구부는 2017년, 제72회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경희대와 연세대를 꺾는 등 대학야구 전통의 강호를 꺽고 8강에 올라 대학야구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재능대학의 쾌거는 여타 대학에 비해 선수선발의 불리 등 여러가지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이룬 것이다. 상위 입상은커녕 한경기 한경기 치르는 것이 고역인 것이 신설야구부 의 현실임에도 전통의 대학강호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기량을 보인 것은 임교수의 폭넓은 선수생활 경험과 교수로서의 지도력은 물론, 인성과 사회성을 강조하며 선수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시민정신에 바탕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딸 잃은 아픔을 헌신과 봉사로 바꾼 노블리스 오블리제

임 교수는 2007년 1월, 큰 아픔을 겪었다. 딸인 효진양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효진양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기독교신앙을 실천하고자, 3학년을 휴학하고 굿네이버스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전도와 봉사활동을 위해 떠났다. 1년간 모범적인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하여 복학을 준비하던 효진양은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으나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맞이한 임교수 부부의 슬픔과 낙망과 좌절, 큰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해온 봉사활동이 다 무슨 소용인가. 모두 그만 둘까’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우울증에 빠져 들었다. 방황하며 딸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에게 아내 김 숙(金 淑)씨는 남편 임씨를 다독이며 제안했다. “조의금으로 모인 돈을 기부해요, 적은 돈이지만, 그게 우리 효진이 뜻을 이어가는 거예요.”

장례를 치른 지 한달만에 조의금을 굿네이버스에 전달했다. 굿네이버스는 “이 돈을 굿네이버스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탄자니아에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아내 김씨는 “평소 딸이 아프리카를 돕고 싶어했다”며 선뜻 동의했다. 또한 임교수 역시 “딸의 뜻을 받들어 계속 봉사하고 섬기기로, 하늘 나라에 있는 딸도 기뻐할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이로써 ‘효진이의 뜻이 타자니아에 테케타직업훈련센터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밝은 미래를 설계하게 된 것이다.

딸의 죽음 속에서도 먼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사랑을 실천하게 된 임교수는 탄자니아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2012년부터 열악한 환경과 빈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탄자니아 아동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임교수는 한그루만 있으면 대학까지 갈 수 있다는 망고나무 식재 후원사업을 시작하는 한편,컴퓨터수리,의복문제를 해결할 봉재훈련과정과 자동자정비훈련과정등 지원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임교수는 마치 화산재 같은 흙땅에서 땅강아지처럼 뒹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잔디운동장을 마련해 주기위해 5년전부터 사비와 모금활동을 계속하고있다 . 이는 스포츠맨으로서의 세계관과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에서 비롯됐다. 아프리카 어린이가 좋은 운동장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며 조국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청년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이웃사랑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임교수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치유로 커뮤니티와 화합하고 융화하는 삶

임교수는 친화력이 뛰어난 리더쉽의 소유자다. 친화력과 리더쉽를 바탕으로 운동선수로서의 경험과 교수로서의 전문성으로 지역사회 및 커뮤니티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여론형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지도자로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임교수는 야구동호인들의 간청으로 2007년 창단된 사회인야구팀 템페스트 감독을 맡았다. 야구를 통한 아마추어 야구인, 중장년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는 한편, 협동과 협력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임교수는 자칫 승부욕에 빠져 사회체육의 본질과 핵심을 잃을 수 있는 작금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서서 건전하고 건강한 커뮤니티 활동으로서의 사회체육, 지역사회활동의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백두대간종주

통일을 염원하고 국토를 사랑하는 임교수는 2013년 1월 고등학교 동문 10여명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 중년을 넘은 나이의 체력으로도, 교수로서의 연구와 강의로 쉽지 않았지만 백두대간 700여km의 지리산 성삼재부터 진부령까지의 총 37개구간을 하루 최장 17시간, 31km를 걸으며 젊은 후배들에게 큰 본이 되기도 했다.

백두대간 종주 산행은 임교수 자신과의 싸움이었으며, 이 싸움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사회지도자로서, 특히 하늘나라로 먼저 간 딸과의 약속과 다짐을 되새기는, 차라리 수도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임교수의 깊은 신앙심과 바른 시민정신, 항상 탐구하고 봉사하는 학자적 자세, 시민사회를 이끄는 리더쉽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함께, 그를 따르게 한다.

임교수는 에밀리 디킨슨의 ‘내가 만일....’이라는 싯귀로 자신의 바람과 희망을 노래한다.

내가 만일 한 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일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사람의 고뇌를 식힐 수가 있다면

내가 숨져가는 한 마리 물새를 보금자리에서 다시 살게 한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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